2020-09-14


<민폐라는 두 글자>
민폐 끼치는 걸 죽을만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다  ‘민폐’ 두 글자에 버튼이 눌려버리고 마는 사람들을 아는가. 사실 내가 그러하다. 민폐를 끼쳐서 죄송스럽고 미안한 마음 보다는 솔직히 ‘민폐를 끼치는 나 자신’을 극도로 싫어하는것 같다. 도시의 익명성을 벗어나 주목을 받게 되는게 괴로운걸까. 이런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그럴수도 있지’이다. 혹은 ‘서로 돕고 사는거지’ 같은 말도 있다. 어쩌다보니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극단적인 이타주의로 도치된 상황이다.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들여다보면 결국 자신의 영역을 침범받는게 너무 싫은 사람들이다. 타인과 살을 부대껴 가며 다 함께 어울리고 양보하고 양해를 구하는것보다 철저하게 나의 영역을 분리한 채 내가 지정해둔 부분까지만 타인의 진입을 허가 하는 삶. 그로부터 민폐는 공포로 다가온다. 절대 내 영역을 허용하지 않던 사람이 타인의 영역에 불쑥 들어가게 되는 공포. 그것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실로 끔찍하기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는 다들 그렇겠지만 비슷한 부분과 전혀 다른 부분이 있는데 바로 그 ‘전혀 다른 부분’이 너무나도 달라서 과연 내가 저 배에서 나왔는가 싶을 정도로 맞지 않는다. 엄마는 타고난 장녀의 성격과 살아가며 겪은 것들이 섞여 ‘보통의 유한 사람’이 되었고 (그것이 어른의 지혜인가? 라는 의문을 갖는다 한들 별로 그런것 같지도 않다) 나는 어쩌다보니 극단의 개인주의자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보니 부딪힐 일도 굉장히 많다.      한번은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마트에서 장을 본 뒤 출차하려는 찰나 차 안을 온통 뒤져도 영수증이 없는것이다. 꼼짝 없이 하루치 주차요금을 내야 했다. 우리 차 뒤에 두 대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얼마의 시간을 벌 수 있는가. 영수증을 끝까지 못 찾는다면? 아니 사실 이 자리에서 영수증을 ‘끝까지’ 찾는게 가능한 일인가?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굼떠있는 앞 차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거 너무 민폐 아닌가. 뒤적뒤적 영수증을 찾는 엄마한테 “엄마 내가 하루치 주차 요금 낼게 빨리 가자” 라고 말했고 엄마는 “얘는! 조금만 더 찾아보면 되는걸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라며 우리의 언성은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뒤에서 차들이 기다리잖아!” “너는 그게 문제야! 서로 서로 돕고 기다려주면서 사는거지. 매사를 어떻게 너처럼 칼같이 구니??” 둘 다 손은 바쁘게 영수증을 찾느라 움직이면서도 말싸움은 계속됐다. 다행히 구석에서 그 날 장 본 영수증을 찾은 덕에 주차비를 안내고 출차 할 수 있었지만 집에 가는길에서도 언성은 끊이질 않았다. 자세한 대화 내용은 읽는 사람의 속을 터지게 할 수 있으므로 생략하겠다. 어쨌든 내게 ‘싸가지 없다’고 말한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바락 바락 대든 나 둘 다 좋은 대처는 아니었지 싶다. 하지만 ‘내가 타인에게 민폐가 되었다’ 라는 정보가 입력되는 순간의 패닉과 당황스러움은 어찌 당해낼 재간이 없다. 쌩돈 몇만원이 날라가는 한이 있어도 순간을 어서 모면하고 싶은것이다. 남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고 싶지 않다. 나의 영역을 지키고 다른 사람들도 저들의 영역을 지켰으면 좋겠다. 내가 불쑥 그곳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남들이 내 영역에 들어오는건 정말 너무 끔찍하다. 이런 나를 보고 엄마는 ‘싸가지’ 라 표현했다. 사실상 맞는말일수도 있다.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순간, 그것은 싸가지 없는 사람들의 내면이 적나라 하게 드러나는 일일수도 있는 것이다.
당신의 주변에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타인이 양해를 구하는것은 괜찮다. 어느정도의 영역만 지켜주면 우리(?)같은 사람들은 당신을 충분히 존중해줄수 있다. 그치만 그들 스스로가 민폐가 되는 상황을 만들어보라. 견디지 못하고 전에는 안보이던 모습을 보이거나 혹은 웃는 얼굴로 우는 것을 볼 수 도 있다.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이타주의의 현장. 이 말도 안되는 문장이 현실화 되는걸 볼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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