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1


짐이 늘어나는건 싫지만 읽고싶은 책은 많아서 언젠가부터 이북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불러서는 안될듯한 단어를 남용하는 기분이지만, 넘어가고, 전자도서는 내게 처음 전자사전을 썼을때의 기쁨을 안겨줬다. 얇은 전기장치에 수십만 단어, 수만권의 책을 담을 수 있는 높은 가치의 물건.

어제 친한 작가언니를 만났다. 어째서 내가 이렇게 작가란 직업을, 책이란 존재를 신성시 하는지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글이란게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오겠지만 나에겐 100년 된 나무가 잘려나가는 원흉이기도 하다. 산소를 공급하는 나무보다 더 커야 하는 가치, 산소 이상의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글. 그 정도가 아닌 이상 나는 글을 글로 인정하지 않았던것이다. 모든 작가의 글들을 부정하는것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가볍게 읽기 좋은 책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구입하는 책은 책장에 오래 꽂혀있어도 왠지 합리적인듯한 고전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되겠다.

'언니 글이 너무 좋아요.'
친한 동료가 말해준적이 있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책과 글은 내게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이자 행위이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물론 신선한 표현과 고루하지 않은 사상 그러면서도 언제나 잃지않는 위트 이 모든걸 갖춘게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기때문에 저 말을 들었을때 너무나 부끄러웠다. 부끄럽고도 부끄러워서 황급히 화제를 돌린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은걸 보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쭉 있었던것 같다. 참을 수 없어서 삐져나오는 생각들을 두서 없이 써내려간, 가끔 쓰는 중간 정도 길이의 글을 다 써놓고 몇번이나 반복해서 읽는걸 보면 출처 모를 자신감도 있는것 같다..

지나간 시간들로서의 글, 굳이 길고 빽빽한 이성적인 사고로 그득찬 글이 아니더라도 나에 대해 내가 써 내려간 기록을 죽기전에라도 어떻게든 모아두면 그건 그걸로 또 나쁘지 않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주변에서 얘기 해줬다. 그리고 '별아, 나무를 죽이지 않더라도 책은 낼수 있어 이북으로 말야' 라는 말도 들었다. 아무튼 그래서 글들이 모이면 제목은 일단 "죽기전에라도 어떻게든"이 되겠다.

죽은 다음에 페소아의 글들처럼 궤짝에서 발견되길 기다리는것보다 죽에전에라도 어떻게든 깔끔하게 정리되어 누구라도 읽어주었으면 좋은 생각들이 많이 생겼나보다.



과연
나올수
있을까

나무한테 미안하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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