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llyfish   
저녁으로 해파리를 먹었다.










정확히는 양장피에 들어있는 해파리였지만.


















해파리가 되고 싶다고,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장래희망 : 해파리












작년 여름 친구들과 따뜻한 남쪽나라에 갔었다. 이 곳의 여름보다 더 끈적거리는 날씨였지만 오히려 그 끈적거림이 더 반가웠던, 어떤 사람들 말로는 공항을 나서는 순간 팍치 냄새를 맡을수 있다는 나라.
3일 정도를 익숙한 거리에서 노닥거리다 중부의 꽤 큰 섬으로 옮겨갔다. 그간 싸구려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으니 섬에서만큼은 호강 좀 하자며 수영장도 딸린 리조트를 골라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돼지고기 숯불꼬치를 곁들여 폭신한 시트위에서 맥주 한잔이라니. 호사스럽다고 느껴질만큼 기분이 좋았다. 그간 못했던 얘기들을 풀어내며 한잔 앞으로의 일들을 얘기하며 한잔. 그렇게 술이 제법 들어가서야 창 밖에서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 내일 스노쿨링 하러갈꺼라 비오면 안되는데 라며 창 밖을 봤더니 왠걸, 여전히 습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럼 이게 무슨 소리지? 소리의 시작을 찾아 헤메다 복도 끝 문을 살짝 열었더니 작은 수영장에 물이 콸콸콸 흘러넘치고 있었다. 우와!! 야!! 밖에 수영장있어!!! 수영하러 가자!! 밤 10시, 쉬겠다는 친구를 두고 김현아랑 둘이 급하게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풀에 뛰어들었다.
몸에 힘을 다 빼고 물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별이 가득할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맑지도 않은 하늘에 보이는건 두꺼운 구름뿐이었지만 늘어진 야자수와 길 건너 bar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묘하게 잘 어울렸다.









조명이 닿지 않는곳의 물은 새카맸다. 리조트 뒷마당에 있는 작은 수영장이란걸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짐작할수 없는 곳의 두려움은 바다의 그것과 비슷했다.
몇년 전 처음 들여다 본 바다는 아름다웠지만 너무나 무서웠다. 숨을 내 맘대로 쉴수 없는곳에서의 발이 닿지 않는 공포는 생각보다 더 절박했고 무슨 아이맥스 영화보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던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도 잠시, 숨을 못쉰다는,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공포가 먼저였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적어도 그 광경을 두려움 없이 한번 더 보려면 수영 정도는 할 줄 알아야겠다고.

두 달동안 세가지 영법의 수영을 배웠지만 유일하게 제대로 하는건 배영뿐이었다. 비록 자유영을 하면 강사분이 비웃는 수영장의 루저였지만 리조트에 딸린 작은 수영장에서는 달랐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배영을 응용한 해파리영법'을 해봤다. 해파리처럼 팔과 다리로 물을 밀어내며 몸을 띄우고 가라 앉을 때쯤 다시 팔과 다리를 찰싹. 멀리서 들리는 노랫소리 때문에 되려 더 고요하게 느껴지는 수영장에는 물 첨벙이는 소리만이 공기를 채웠고 물에 둥둥 떠서 밤 하늘을 바라다보니 나 자신이 사람이 아닌 다른 생물이 된 기분이 들었다. 해파리는 바닷속을 부유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지금 이 하늘을 보고 있는 해파리도 있을까? 해파리는 어느 어느 바다를 가봤을까.
그 뒤로 가끔 왠지 모르게 지치는 날이면 불을 다 끄고 침대에 누워 모임별의 '2'를 들으며 해파리가 된 상상을 한다. 검은 심해를 목적도 없이 부유하며 팔 다리를 찰싹. 그리고 가끔씩 수면에 올라와 바라보는 밤 하늘도.







다합에 가고 싶다. 아니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가서 오픈워터 라이센스를 따고 두려움 없이 바닷속을 제대로 보고 싶다. 해파리는 될 수 없으니 해파리가 보는 것을 나도 한번 보고 싶다.






김건동 2012/07/22    
저는 잉어가 되고싶습니다

장래희망 : 잉어
문득 떠오른 얘기   



인도, 바라나시에서 당시 쓰던 mp3 플레이어 충전기 아답터가 충전중에 불꽃을 퍽!! 하고 튀기며 고장이 났었다. 곧 20시간 넘게 이동해야 하는 시기였는데 노래 없이 장거리 이동이라니. 덕분에 다음 도시로 넘어가던 기차에서 만난, 미리 예매해둔 내 자리에서 코딱지 파고 있던 방글라데시 친구들이랑 얘기도 나누면서 재밌게 갔지만 (그중 한명의 이름이 바부였다 바부... 바부 증말 너무 귀여운 이름이다 너 그게 한국에서 무슨 뜻이냐면.. 이라고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양국의 우호관계를 위해 응?이름이 뭐라고?바부??? 바부?? 와 조좋은이름이다 로 수습함) 기차를 내려 갈아탄 지프로 3시간동안 산길을 뺑뻉뻉뺴얘얘뺴얘뺴뺴뺴뺴뺴뺴뺴뻉 굽이굽이굽이구비구비굽귑귀뷕구구굽이굽이 멀미 나는 길을 올라가다보니 mp3가 참 절실하게 느껴졌다.


뺑뻉뻉뺴얘얘뺴얘뺴뺴뺴뺴뺴뺴뺴뻉
굽이굽이굽이구비구비굽귑귀뷕구구굽이굽이 3시간 동안 올라간  
산동네의 위엄.jpg
(백두산 해발 2,750m, 다즐링 해발 2248m)

다즐링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서 일하던 동갑내기 친구를 앞세워 동네의 전파상을 뒤지고 다녔다. 두 집에서는 마담 이거 못고쳐, 그냥 하나 사지 그러니 싸게 줄께 라며 다른 충전기를 꺼냈는데 어? 이거 다른 종류의 단자인거 같은데? 아니아니 괜찮을꺼야 (찡긋) 라는 쿨한 모습을 보여줬고 마지막 집에서 한번 해볼께 그치만 될지 안될지는 나도 모ㅋ름ㅋ 이라고 했다 (물론 ㅋ라고는 안했습니다)


전파상이 있던 다즐링의 중심가

그때의 내게 있어 그 512MB짜리 mp3 는 아마 일기장 다음으로 소중한 물건이었을꺼다. 인도 도착하자마자 새로 산 디카도 잃어버려, 지갑 소매치기 당해.. 그 마당에 mp3까지 못듣는다니!! 으아니!! 왜 난 햄보칼수가 엄써!!! 였다 진짜로. 전파상 아저씨한테 절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굽실굽실 제발 고쳐주세영 플리즈 그거 없으면 나 집에 갈꺼임 흑 다즐링 짱 좋은 동네임 사랑해요 다즐링 사랑해요 인디아 포레버 플리즈 엉엉 거리면서 부탁을 해서 그런지 몇시간 뒤에 갔더니 짜잔!! 하고 고쳐놓았더라. 물론 주면서 이거 내가 진짜 힘들게 고쳤거든? 그리고 너네 한국산 부품이 금방 고장나서 내가 중국산 부품을 넣었어(찡긋) 고마워하라고(찡긋) (인도에선 메이드 인 차이나가 짱입니다) 그렇지만 규격제품이 아니라 언제 또 터질지는 나도 몰ㅋ라ㅋ 라고.. (역시 ㅋ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런데 아저씨 원래 있던 그거 역시 중국산이 아닐까 하는데요.. 어쨌든 다행히 그때 고친 충전기는 여행의 마지막까지도 잘 버텨주었고 어쩐일인지 한국에 돌아와서도 터지지않고 엄마가 mp3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기전까지 잘 쓸수 있었다.


처음 인도에 갔을때 저 512MB 짜리 mp3 플레이어에 한 100곡정도 노래를 닮아갔는데 폴더는 두개, 신남/슬픔 이었다. 신나고 행복하고 기쁠때 들을 노래 50여곡과 슬프고 우울하고 외로울때 들을 50여곡. 중국산(찡긋) 부품을 새로 낀 충전기로 충전 하자마자 들은 노래는 스티비원더의 노래였던거 같다. 아니 리얼리티였던가? 그때의 기쁨이란. "신남" 폴더의 모든 곡을 돌려들어도 신나고 신나고 또 신났다. 다시 노래를 들을수 있어! 기차에서도 2층버스에서도! 혼자 있는 도미토리에서도!

노래를 너무 많이 들어서 조금 쉬어야 할때라 헤드폰 사용을 자제 하고 있다가 문득 저 때 생각이 났다. 저런 때도 있었지. 그랬지 참.







옛날옛적에   



옛날 옛적에 우리는 이런것도 했더랬습니다


와우 밟던 여자 김현아와
슬랩 하던 여자 박별..................................

그리고
7년전 이 드럼을 치던 친구는 지금
타마앤베가본드의 드러머를 하고 있답니다. 으히힛


엉망이지만
왠지 감회도 새롭고 웃기고 즐겁고 그러네요

이 때는 정말이지
레드핫을 엄청 들었던 때였어요
김현아 덕분에 투톤슈도 엄청 들었던거 같고..



네 뭐 그렇고 그랬던 그 때 음후하핳핳핳


안하철
2011/03/27  × 
저도 언제가.. 베이스를 치며 놀수있기를.. ㅠ흑
부금
2011/03/30  × 
7년 전이라...
전 그 때 어떻게 하면 학원강사 때려치고 평생 세계일주나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잔머리만 굴리고 있었습니다. ㅎㅎ

별님~ 태국여행은 잘 다녀오신거죠?
아~ 팟타이가 땡기는 밤입니다. ㅠ,.ㅠ
민우
2011/05/03  × 
오우 굉장히 신선한데요
가끔 반전으로 공연해 주시면 어떨까요 ㅎㅎ
나비   
방정리를 하다가
5년간 행방불명이었던 공CD를 찾았다.

CD겉에 써있는건
Nabi...



아.
나비를
영어로 Nabi라고 써놓은
중학교2학년 수준의 감수성이
(절대 중학교2학년 여러분들을 비하하는건 아니에요
중학교2학년이 제일 순수하다.. 뭐 그런뜻...아니..그러니까......)
흠뻑 묻어나는..


부정하고 싶은 과거 ㅋㅋㅋㅋㅋ



작곡,건반,스트링,베이스 박별
기타, 믹싱 김현아



유치해
유치해서
지워버리고 싶어
없애버리고 싶은데
너무 웃겨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김현아 솔로 친거봐
20살짜리 여자애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클릭은 듣고 한겁니까 왜이렇게 절어
나는 이때부터 절었구나 절뚝절뚝
중간에 브레이크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게
인생이죠

아 왜이렇게 웃긴거야 ㅠ_ㅠ_ㅠ_ㅠ-ㅠㅠ_ㅠ_ㅠ-ㅠ_ㅠ_ㅠ-ㅠ-ㅠ_





같이 웃자고 올려요


박별, 김현아가 부릅..아니 연주합니다

2005,나비
아니다
Nabi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이런 어린시절 하나쯤 있는거잖아요
손발이 오글거리는
누구나 가슴속에
혈기 왕성한 시절 하나쯤
있는거잖아요










김현아 2010/09/04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박별 2010/09/04    
차마 못올린 앞부분에서는 와우를 빛의 속도로 밟고 계신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훵키해.....
박별 2010/09/05    
아 일주일 웃을꺼 다 웃었네
임상현 2010/09/05    
...저 지금 이게 왜 웃긴지 모르겠어요 ㅋㅋ 나만그런건가;;;; 왜그래요 누나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쁘지않은데;;;ㅋㅋㅋㅋㅋㅋ
Esthero
2010/09/05  × 
음악애호가의 귀에는 기타의 떨림이 너무 좋은데요. (나름 시디 3000장은 된다능) 제 마음을 흠뻑 울리는군요. 언젠가 현아씨가 이런 기타 솔로 보여주길! 히-
시간도깨비
2010/09/06  × 
ㅋㅋ..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아마틱한(?) 이런 소리들... 전 참 좋아요 ㅎㅎ
오브of
2010/09/21  × 
노래 좋잔아요?...........
박별 2010/09/22    
음 역시 김현아랑 저만 웃긴거였나요 흑 ㅠ_ㅠ
옴므파탈
2010/09/29  × 
우왕 스피릿이 느껴져요^^
돈돈
2010/09/30  × 
흠 나름 순수한 감수성의 연주? ㅋㅋㅋ 흠 뭔가 제목은 나비인데....
슬픈건 나만 슬프게 들리는건가요...
채원
2010/10/12  × 
중2때요? 우와~ 웃기다기보다 저는 대단한거같은데요 좋아요^^
프리지안 2010/10/13    
제가 랄라스윗분들 그때 그시절 나이랑 비슷해서 그런지 듣기 좋은데여~
danna 2010/10/25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좋군요 ~
셀리하 2010/11/01    
뭐..뭘까.. 이 조..좋은 소리는!!>_<!!
박별 2010/11/02    
아 정확히는 중학교 2학년 수준의 정신연령을 가진 스물한살과 스무살이 만든 곡이에요 ㅎㅎㅎㅎㅎ
유넬 2010/11/03    
계속 듣고 있네요ㅠㅠ
박동진
2010/11/05  × 
언젠가 현아님이 일렉기타를 잡고 연주하는 모습이 꼭 보고 싶습니다ㅋ
윤투더진
2010/11/30  × 
아~~ 아름답다 .... ㅠㅠㅠ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금
2011/03/07  × 
웃기진 않고 좋기만한걸요~ *^ ^*
난 스무살 때 뭘 만들었더라...
신문으로 악어 만들어서 자는 언니 놀래켜 주고 엄마한테 쥐어박히고...뭐...그런 ㅋㅋㅋ
MJ 2011/03/15    
두분이 댓글달아 놓은게 더 재미있네요 ㅎㅎ 연주는 잘들었습니다 ㅎ

20살과21살에 대단하시네요 ㅎㅎ
박현우 2012/04/01    
이런것들이 다 추억이지 않을까요?..... 그런 한때 즐겁게 했던것 들을 기록으로 남겨저 있다는건 너무 행복한 일인거 같아요
메라 남 따라헤   
인도를 가고 싶어했던건 순전히 TV와 책과 여행기에서 봐온,
동양인의 동양에  대한 오리엔탈리즘 때문이었다.
일단 인도에만 가면 모든게 다 신비롭고 성스러울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신들의 나라, 부처가 태어나고 수백의 신이 존재하는 그곳.
나는 그곳에 가려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신호나 교통법규 따위는 태초부터 없었던것처럼 보이는 무차별한 도로를 지나
델리의 여행자 거리인 빠하르간지에 처음 도착했을때
그 광경에 쇼크를 넘어선 두려움 그 자체를 느꼈다.
한국을 떠나 처음으로 다른나라에 간거라 느끼는 이질감과는 다른,
마치 하늘이 땅이고 땅이 하늘인것만 같은 놀라움뿐이었다.
여기저기 어떻게든 등쳐먹으려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한국여자를 꼬셔보려는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 남자들이 수두룩 했고
친절한 호의와 도움의 손길마저도 곡해하여 도망다니기 바빴다.
이런곳에 기대했던 신비함과 성스러움은 있을리 만무했다.
누구는 박시시 꼬마들을 보고 눈물을 참을수 없어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눈물은 커녕 짜증부터 났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랬을거다.)
구걸을 하는게 당연하고 심지어 내가 자신에게 돈을 주는 행위는
자신이 아닌 나를 위한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구걸을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보고 내가 어떻게 눈물을 흘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동을 느낄수 있을까.
나는 인도가, 그리고 인도 사람들이 너무 어려웠다.



혼돈의 빠하르간지 (그곳을 훌륭하게 표현해내는 단어 chaos)를 떠나
인도에서의 두번째 도시인 자이살메르에서 지낼때 였다.
별다른 에피소드 없이 며칠을 평화롭게 살다 현아가 성문 앞의 집시 가족한테
바이올린 비슷하게 생긴 전통 악기인 라완따를 사면서
그들의 집에 초대를 받게됐다.
인도 오기전부터 꿈꿔오던 현지인 집으로의 초대,
게다가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집시다.
유럽 집시들의 원조라는 라저스탄 집시.
걱정반 기대반으로 집시 꼬마를 따라 간 그곳
선셋포인트 아래의 깔라깔르 꼴로니는 집시마을이었고
여기저기 다 떨어진 옷에 맨발로 다니며
'원루피 원루피'를 외치는 꼬마들로 가득했다.







허름한 텐트 앞에 여기저기 구멍이난 천을 깔고 앉아
현아는 람빠띠 (우리를 초대한, 큰언니라고 생각하라며
발목에 은발찌를 채워주던 이 가족의 안주인이다.)의 남동생에게
라완따를 배우고 나는 한국에서 가져간 요술풍선으로
람빠띠의 아이들에게 강아지를 만들어줬다.
잠시 후 전에 한번 우리처럼 초대 받아 온적이 있다는
프랑스 커플 벤과 까뮈가 야채와 이것저것을 사들고 방문했고
프랑스커플, 현아랑 나, 그리고 람빠띠의 대식구와 함께
모래 씹히는 짜빠띠에 손으로 커리를 찍어 먹고 짜이까지 배부르게 마셨다.
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하늘에 는 보름달이 떠 올랐다.
누군가 하늘에 뜬 별을 보고 "따라!" 라고 외쳤다.
따라, 그게 별이라는 뜻이구나.

-내 이름은 따라 입니다를 힌디로 어떻게 말하지?

-메라 남 따라 헤.

-메라 남 따라 헤?

-압꺄 남 따라 헤?

-메라 남 따라 헤.

내 이름은 따라입니다.
이 날부터 내 이름은 따라가 됐다.
벤과 까뮈에게는 불어를 배우고 우리는 한국말을 가르쳐줬고
람빠띠의 가족들에겐 힌디를 배웠다.
가로등 하나 없는 깔라깔르꼴로니의 하늘은 보름달의 따뜻한 하얀 빛으로 밝기만 했고
그 하늘 아래에서 람빠띠의 남편이 라완따를 켜고
람빠띠가 꼭 우리네 할머니처럼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아빠다리를 하고 앉은 내 품엔 람빠띠의 막내 딸인 삥끼가 안겨있었고
다들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래를 감상했고 다들 웃고있었다.
현아가 말했다.

-아ㅡ행복하다ㅡ

처음 람빠띠네 초대를 받았을땐 사실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했다.
무슨일이 있어도 늘 차고 다니던 복대를 숙소에 두고 나올 정도로 반신반의 했었다.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본 모험담, 초대 해놓고 음식에 약을 타서 재운 뒤
가진걸 다 뺏어서 내다 버린다거나 하는 그런 얘기들을 생각하면서
불안해 했고 의심 했었다.
우린 이 사람들 덕분에 이렇게나 행복했는데 말이다.
성으로 돌아가는 길, 어두운 자이살메르 골목을 머쓱해 하며 걸었다.

-여행기를 너무 많이 읽었나봐.









그날 이후 성문 앞에서 악기를 팔던 람빠띠네 가족들은
우리가 왔다갔다 할때마다 손을 꼭 붙잡으며 인사했고
(성 안에서 묵었기 때문에 입구가 하나 밖에 없는 성 밖을 오갈때마다 마주쳤다.)
람빠띠는 언제 또 올꺼냐, 저번처럼 저녁 먹고 노래도 부르고 하자, 라며
또 놀러오라고 성화였다.
예상보다 자이살메르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더 지체할수 없었고
람빠띠네 갈 수 있는 날은 낙타싸파리를 마친 다음날 밖에 없었다.
전날 나는 몸살과 복통으로 심하게 앓은 상태였고
현아 역시 전신 통증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왠지 그냥 이렇게 이 곳을 떠나는건 아니다 싶었다.
이번엔 뭘 사갈까.. 하다가 감자나 컬리플라워 같은 야채는 너무 약소한거 같아서
저번에 보니까 애들 옷이 다 찢어졌길래 애기들 옷이랑 뿌자 뻔자비를 사서
다시 한번 람빠띠네 텐트를 방문했다.
뿌자,리치먼, 어누, 삥끼한테 옷을 입혔는데
자신이 직접 고른 뿌자를 빼고는 애들 옷이 전부 다 작다.
다른데는 대충 맞는데 애들이 배만 볼록 나와서 상의가 많이 작은가보다.
배만 볼록 나온게 기아의 특징이라지.
안쓰럽긴 한데 뜨거운 햇볕 아래 힘든 몸을 이끌고 돌아다니면서 고른 옷이 작아서
왠지 지치는 느낌이었다.
치마만 입고 다니던 삥끼에게 예쁜 새 옷을 입혔는데
윗옷이 안들어간다며 짜증을 내는걸 보니 더 지친다.
그래도 람빠띠가 좋아하는걸 보니 다행이다 싶었는데
리치먼을 무릎에 앉히더니 발을 보여준다.
하도 맨발로 돌아다녀서 아예 딱딱하게 굳은 여섯살짜리 꼬마의 발.
여기저기 깊게 찢기고 피가 굳어버린 집시 꼬마의 발이었다.
신발이 너무 비싸서 사 신을수가 없단다.
그래, 저번에도 이렇게 아이들의 찢어진 옷을 보여줬던것 같다.
이번에는 삥끼의 머리에서 이를 잡아서 보여주면서 샴푸가 없어 감지 못한단다.
샴푸도 너무 비싸다고.
그러더니 람빠띠는 자기가 부업으로 만들고 있는 라저스탄식 여자 속옷을
한아름 꺼내오더니 하나 고르란다.
선물은 아닌거 같고 돈을 얼마 줘야 하는건지도 몰라서 사양 했더니
계속 골라 보라고, 이것 저것 입혀보기까지 해서 어쩔수 없이 하나 골랐다.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고개를 갸웃 하면서 as you like 이란다.
제일 어렵고 곤란한 말.
갖고 나온 돈을 옷 사는데 다 써서 내일 준다고,
배탈때문에 저녁을 먹으면 안된다고 하고
부랴부랴 람빠띠네 집을 나섰다.

다음날 성 안에서 릭샤를 잡아타고 버스스탠드까지 갔다.
성 문앞엔 역시 람빠띠네 식구들이 있었지만
릭샤 안에서 고개를 푹 숙인채 모른척 하고 지나갔다.
그렇게 람빠띠네 식구들로부터 도망치듯이 자이살메르를 떠났다.
신발도 샴푸도 돈도 주지 않고 떠나왔다.


나의 여행은 류시화 시인의 그것처럼 낭만 가득한 여행기가 아니었다.
인도에만 가면 뭔가 깨달음을 얻을수 있을것만 같았고
웃음과 감동이 가득한 에피소드를
주르륵 써내려갈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이게 현실이고 내 여행이었다.
이미 수많은 여행자를 상대해온 람빠띠와 그 가족들이었고
아직 여덟살 밖에 안된 뿌자는
그 마을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하는 집시 꼬마였다.



두달동안 여행했던 인도는 이런 나라였다.
서양인들 그리고 심지어 같은 동양인들에 의해 신비한 나라,
신들의 나라로 보여지고 있지만
이미 수억명의 여행자들로 인해 닳고 닳아버린 그런 나라였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인도에 순수를 바란다.
아직 때묻지 않은 순박한 미소를 바라고 인도를 찾는 사람들.
그치만 대학교육을 받은 한국인 보다 더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집시가
옷을 사갔더니 이번엔 신발을 사달라는, 그게 지금의 인도였다.

바라고 기대했던 깨달음은 커녕 욕과 체중만 늘어난 여행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인도에 또 가고 싶다.
그렇게 당하고 욕하고 분노에 이를 갈았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외국인 백패커들보다
비상식적인 모습들에 치를 떨며 싫어했던 인도 사람들이 더 그리워진다.
(인도까지 상식이란걸 들고 간 내가 이상했던걸지도 모르겠다.)
이게 사람들이 말한 인도에 대한 상사병인건가.

람빠띠에게 편지를 쓸 예정이다.
텐트에서 찍었던 몇장의 사진들과 그녀에게 빚진 약간의 돈을 동봉해서.
그리고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잔 말과 함께.
만약 그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번엔 샴푸든 신발이든 뭐든 될수 있는대로 다 주고 싶다.
그게 알량한 동정심이든 실리에 맞는 계산이든
그런건 이제 중요치 않다.
릭샤안에 숨어서 그들을 지나친 그 순간에 난 그들에게 큰 빚을 진거니까.








Ps. 물론 이게 인도의 전부는 아니다.
인도는 한 단락의 글로 표현해낼수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여행중 정말 많은 인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고
친절하고 그야말로 순수 그 자체인 인도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다만 여행하면서 인도가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 변화는 99% 여행자들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인도였다' 라는 표현을 많이 썼지만
사실 그건 내가 말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저 인도를 딱 두달 돌아다닌 배낭여행자의 짧은 생각일뿐.




Ps. 2007년 5월에 쓴 글이다.
이 글을 쓰고 7개월 뒤 다시 인도에 돌아가서 람빠띠를 다시 만났다.
그새 아이를 한명 더 낳았고(-_-;) 샴푸와 세제를 사가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저 위의 꼬마가 이렇게 자랐다.
그새 결혼한 람빠띠 첫째 딸 뿌자(8세-_-;)와 뿌자 오빠, 막내동생.



surka221
2010/08/18  × 
우왕 1등이에요~ 별님 쪽지보고왔는데 아직횡하네요~
TripleBer
2010/08/18  × 
음... 별님의 이름이 이렇게 만들어졌군요..ㅋㅋ
동하니
2010/08/18  × 
저두 왔네용..ㅋ
stargirl
2010/08/19  ×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굉장히 현실적이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셀리하 2010/11/01    
메라 남 셀리하 헤.
    로그인 [1] 2 [3]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HUNIZ